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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스토리

MIRAE Story

여가, 문화, 나눔, 주거 등 시니어를 위한 가치 있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옛 모습 그대로여서 정겹다

2023-06-13

옛 모습 그대로여서 정겹다
시간이 멈춘 마을, 판교 레트로 여행


판교 여행1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일상이 흘러가는 곳이 있다. 흔히들 '시간이 멈춘 곳'이라는 표현을 한다. 충남 서천군 판교면 현암리에 가면 딱 그런 풍경을 만나게 된다. 그 거리에 서면 곧바로 시간여행 속으로 들어간다. 혹시 판교라 할 때 서울 부근의 판교 신도시를 먼저 떠올릴 수 있다. 판교 신도시와는 확연히 다르게 서천의 판교마을은 말 그대로 찐 '레트로' 여행지다.
 
한때는 충남 3대 우(牛) 시장이 들어서던 곳이었다. 광복 이후 술 빚는 주조장과 벼와 보리 등의 곡물을 찧거나 빻기 위한 정미소는 늘 바빴고, 극장이나 사진관 또한 활기차게 호황을 누리던 당시 첨단의 판교마을이었다. 그런데 시대의 흐름은 판교 마을을 바꿔놓았다. 기차역이 판교역이라는 이름으로 현암리에 세워지자 대부분의 상권이 현암리로 이동되고 현암리의 번성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판교 여행2

하지만 1980년대 이후 도시 중심의 국토개발로 지역의 성장속도는 느려지기 시작했고, 2000년대 들어 급기야는 장항선 직선화 사업으로 판교역이 훌쩍 빠져나갔다. 이때부터 붐비던 우시장 거리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공간이 서서히 사라지거나 쇠락하기 시작했다. 교통과 상권을 모두 잃은 마을은 성장이 멈춘 채 그대로 남아 잘 돌아가던 시곗바늘이 느릿해지다가 멈추어버린 모습이 되어 버렸다. 
 
여전히 남아 있는 시설이나 마을의 빛바랜 풍경 속에서 근대문화와 역사를 엿본다는 것, 즐겨볼 만하다. 옛것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추억 속의 낡은 공간에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아련하고 정겨운 시간이 시작된다. 마을의 상징적인 공간마다 친절한 안내판이 준비되어 있다.

 
판교 여행3  
 
구 판교 역사(驛舍) 앞으로 가면 오래된 소나무가 먼저 눈에 확 들어온다. 1930년대에 심은 나무로 멀리서 장 보러 온 사람들이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소나무 주변에서 쉬던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강제징용과 약탈, 위안부로 끌려가는 우리 가족들의 아픈 현장을 소나무는 바라보았을 것이라고, 6·25전쟁 이후 날로 변화해 가는 세상을 묵묵히 지켜보았을 구 역전 소나무 이야기가 안내판에 씌어 있다. 
 
판교의 영화를 기억하고 아픔을 바라보았던 노송 주변으로 빙 둘러 만든 울타리는 누구라도 앉을 수 있도록 의자로 만들어졌다. 지금도 동네 어르신들과 오가는 이들이 함께 앉아 쉬고 있다. 이제 역사는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는 '판교특화음식촌'이 들어섰다. 그 앞으로 세워진 옛 판교역사를 축소한 조형물이 그나마 그 시절의 모습을 떠올려보게 한다.


 
판교 여행4
 
마을 거리는 대체로 한산하다. 주민들이 일상을 지내는 게 더러 보이고 이따금 여행자들이 오간다.' 반공 방첩'표어가 벽에 남아 있는 옆 골목길 저편으로 판교극장이 보인다. 다행히 원형을 유지한 모습이다. 낡고 기능은 잃었지만 허름한 영화관이 옛 기억을 소환한다.
 
극장은 새마을운동 시절에 공관으로 사용되다가 문화생활을 위한 판교극장으로 이용되면서 인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당시 이 공간은 체육관으로, 또는 인기 연예인들의 쇼프로그램 공연장으로 쓰였다. 인근 지역 사람들까지 몰려들던 장소가 바로 판교극장이었는데, TV가 보급되면서 하향세를 맞았다. 옛 그대로 자리를 지키는 건물의 외벽은 얼룩이 지고 텅 빈 채이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이 유난히 오래 들여다보는 공간이다. 매표소 창구에 관람료 일반 500원, 청소년 200원이라고 적혀 있다. 그 외벽에는 '꼬마신랑', '미워도 다시 한 번', '별들의 고향',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의 영화 포스터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판교 여행5
 
마을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예전에 어디선가 본 듯한 점포나 건축물들이 나타난다. 삼천리 자전거포를 지나, 대중가요 가사처럼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일 듯한 찻집을 지나면 농약사와 서울시계점이 나온다. 건강원 건물에 나란히 백숙 통닭집이었던 흔적도 남아 있다. 요즘 전화 주문으로 쉽게 먹는 치킨집만 아는 아이들이 백숙 통닭을 알기는 할까. 골목 저편으로는 여름을 맞은 논과 밭에서 일하는 주민들이 오가는 시골마을의 풍경도 겹쳐진다. 
 
장미사진관이었던 곳을 지나 진흥농기계상 앞으로 우시장이던 거리가 나온다. 오일장이 서면 각지에서 소가 1000여 마리씩이나 모이던 곳이 이젠 공터다. 활기차던 우시장은 밀짚모자에 두루마기를 입고 소를 끌고 나온 마을 어르신과 수많은 소떼들이 그려진 벽화가 대신한다.  


판교 여행6
 
이제는 이전의 기능은 다 사라진 시골 소읍이지만 보존과 변신의 조화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활용가치가 높은 근대건축물 일곱 군데가 국가등록문화재 제819호로 등록이 되었다. 등록건물은 구 동일정미소, 구 동일주조장, 근대상가주택 한두 군데, 구 삼화정미소(오 방앗간), 구 중대본부, 구 판교극장 등 7건이다.  
 
근대역사문화공간 삼화정미소는 이 지역 쌀 유통의 주요 시설로 파란 지붕의 건축물이 지금 보아도 멋지다. 방앗간 시설과 건축형식이 잘 보존되어 마을에 들어서면 바로 눈에 들어온다. 삼화(三和)라는 상호는 삼형제가 화목하게 운영하라는 마음을 담아 만든 명칭이라고 한다. 동일주조장이나 적산가옥이라 불리는 상가주택 등도 그 시절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쇠락했다. 


 
판교 여행7
 
예스러운 정적이 감도는 한적한 마을이기는 하지만 들여다보면 바삐 운영하는 점포들도 제법 여럿이다. 판교역전 슈퍼를 비롯해서 철공소가 운영되고 있었다. 전파사와 미용실을 지나면 시계방도 보인다. 독립운동가 고석주(1867~1937) 선생의 흉상이 있는 기념공원 부근에는 건강원 상호가 반듯하다. 천오백 년 전통 앉은뱅이술 한산소곡주가 원조라고 빨간 글씨로 강조한 것도 보인다. 앉은뱅이술이란 별명은 한번 마시기 시작하면 앉은뱅이처럼 자리에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한다는 술을 뜻하는데 이 술이 이 지역 서천의 명물이다.
 
원조를 강조하는 냉면집도 서로 마주 보며 운영되고 있다. 콩국수가 맛있는 집도 있다. 수타면 중화요릿집과 너더리 식당에는 여행자들이 기웃거린다. 참고로'너더리'는 널다리라는 판교(板橋)의 옛말이다.

 
판교 여행8
 
온 마을에 덕지덕지 묻어 있는 세월의 흔적이 그 시절의 추억을 부른다. 오래된 이야기들을 그대로 간직한 채 옛 시간의 감성을 전한다. 허름하고 녹슬었어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시간이다. 심란한 세상에 살면서 잠깐 다 잊고 판교의 현암리 마을 속으로 들어가 보는 일, 어슬렁어슬렁 걸어도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여전히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마을이므로 기본 예의 장착은 당연하다. 


글·사진   이현숙 굿네이버스 미래재단 객원기자/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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